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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내가 최근에 들은 말 중에 나한테 가장 현실적인 도움이 되는 조언이었다.

"모든 대화에서 '그런데'를 빼세요."

대화를 하다 보면 추임새처럼 중간에 공백을 메꾸는 말을 습관적으로 쓰게 된다. 생각하는 동안의 공백을 채워주는 특별한 뜻 없이 그저 소리에 가까운 단어들에는 '음', '그러니까', '있잖아', '그래서', '말하자면' 등이 있다. 그 중에 특이하게 '그런데'는 상대방 말을 부정하는 느낌을 주는 단어다.

아무리 미소를 보이고 배려와 칭찬을 많이 하고 대화 내용을 긍정적으로 이어가더라도 '그런데'라는 말을 수도 없이 반복한다면 상대방은 '이 사람은 도대체 내 말에 동의하는 구석이 없구나' 하는 느낌이 들 수 있는 것이다. 실제 맥락상 내 생각이 상대방 의견에 동의하는 것일지라도 표현하는 방법에서 부정적인 단어가 쓰이면 이성적으로 내 뜻을 이해하는 사람에게조차도 부정적인 단어가 주는 이미지가 무의식중에 나의 인상으로 각인되는 것이다.

'그런데'라는 말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나의 주장이 나오게 돼 있다. 대개는 앞에 하던 좋은 말들과 반대되는 내용이다. 상대방의 의견과 거의 비슷한 말을 하더라도 중간에 '그런데'라는 말을 넣으면 마법과 같이 너는 틀렸고 내가 맞아 라는 느낌을 주게 된다.

응 니 말이 맞아. 그런데 내 생각은 이래.
  - 생각이 비슷하든 말든 상대방 의견을 부정하고 반박하는 느낌이 된다. 동의를 해 봐야 소용이 없고 상대방은 자기 의견에 대해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응 니 말이 맞아. 그리고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나의 생각도 공유해 보자면) 내 생각은 이래.
- 생각이 아주 다르더라도 상대방은 동의를 받은 느낌이 든다. 듣는 사람이 열린 마음이라면 내 생각이 더 쉽게 받아들여진다.

말은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말 하는 방식이 생각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런데'를 빼면 상대방에 동의하는 느낌을 주면서 자연스럽게 내 생각도 표현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생각을 반박 당하기보다 자기 생각을 인정하고 동의하는 느낌을 받길 바란다. 차라리 '그런데' 앞에까지만 말하고 '그런데'와 그 뒤에 할 말은 그냥 집에 가서 혼자 생각해 보기로 하는 편이 낫다. 그게 중요한 이야깃거리라면 좀 더 생각해 보고 나중에 따로 진지한 얘기를 할 자리를 마련한 다음 차분하게 얘기하면 된다. 그 과정에서 '그런데'는 필요하지 않고 대부분 '그런데' 뒤에 내가 하려던 말은 별로 중요한 얘기도 아니다. 

얼마 전에 알게 된 사람 중에 교포라서 영어를 더 잘 하는 분이 있다.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데다가 한국어까지 아주 잘 하는 분이다. 이 분은 성격도 밝고 친절하고 주변 사람 배려도 잘 하고 인간 관계도 좋다. 단 하나, 한국어로 대화할 때 '그런데' 라는 말을 많이 쓰는 분이다. 처음엔 뭔지 몰랐고 어딘가 대화가 자연스럽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교포라서 그런가 싶었다.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이 분과 대화를 하다 보면 자기 생각이 분명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고, 시간이 좀 지나서 그 분이 어떤 말이든 시작할 때마다 '그런데'라는 말을 쓴다는 것을 인식하게 됐다. 그 때부터는 그 분이 말을 할 때마다 한 문장 안에 '그런데'를 얼마나 많이 사용하는지를 들으며 속으로 놀라곤 했다.

'그런데'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스스로 긴장을 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내가 말할 때 그 분이랑 마찬가지로 '그런데' 습관적으로 쓴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가 등장할 때마다 듣는 사람은 긴장을 하게 되고 편안한 분위기의 대화와 멀어지게 된다. 지금까지 나와 대화했던 사람들 중 많은 수는 내가 그 교포분과 얘기할 때 느꼈던 것처럼 내가 '그런데'를 말할 때마다 불편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 분은 교포라서 대부분 영어를 쓰면서 생활하니까 한국어로 하는 대화가 좀 어색하더라도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나는 그러면 안 된다.

하필이면 추임새로든, 화제를 바꾸는 말로든, 말을 시작할 때 주의를 집중시키는 용도로든 '그런데'라는 말은 거의 쓸 필요가 없다. 생각을 조금 해 보면 내가 '그런데'를 말하려는 경우에 대부분 다른 든어로 대체가 가능하다. 그것이 알고싶다 같은 다큐멘터리에서 주의를 집중시키기 위해서 쓰기에 효과적인 말일 수는 있겠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내 이미지가 한결같이 그것이 알고싶다 진행자같은 분위기라면 그게 나한테 좋은 일일지 생각해 봐야 한다. 이 글을 작성하면서도 '그런데'라는 단어나 '-데'라는 어미 자체를 빼버리려고 나는 무진 노력을 했다.

좀 더 연습해 보자.

저는 별다방 커피 좋아해요. 그런데 저녁에는 커피 마시면 밤에 잠이 잘 안 오죠. (X)
저는 별다방 커피 좋아해요. 저녁에는 잘 안 마시고요. (O)
저는 별다방 커피 좋아해요. 특히 일과 중에 커피 마시면 집중이 잘 돼서 좋죠. (O)
저는 별다방 커피 좋아해요. (O)

자동차가 있으면 편하죠. 그런데 사고 안 나게 조심히 다녀야 돼요. (X)
자동차가 있으면 편하죠. 사고 안 나게 조심히 다니면 돼요. (O)
자동차가 있으면 편하고 좋죠. (O)

대화하면서 상대방을 배려하는 게 중요해요. 그런데 쉬운 일은 아니죠. (X)
대화하면서 상대방을 배려하는 게 중요해요. 쉬운 일이 아니니까 노력이 필요하죠. (O)
대화하면서 상대방을 배려하는 게 중요해요. 그래서 노력을 많이 해야 돼요. (O)
대화하면서 상대방을 배려하는 게 중요해요.

어머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사실은 돈이 없었던 거죠. (X)
어머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요. 돈이 없어도 자식들만은 먹이려고 하셨으니까요. (O)
어머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요. 없는 형편이었지만 참 따뜻한 말씀이었어요. (O)
어머님도 사실 자장면 좋아하세요. (O)

저기요. 그런데 실례지만 부탁 좀 드려도 될까요? (X)
저기요. 실례가 아니라면 부탁 좀 드려도 될까요? (O)
저기요. 부탁 좀 드려도 될까요? (O)

뉴튼 2법칙은 참 유용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X)
뉴튼 2법칙은 참 유용합니다. 이번엔 더 중요한 것에 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 (O)
뉴튼 2법칙은 참 유용합니다. 아시겠죠? (O)

빡션 이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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