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 It is okay. 라고 한다. 어떤 한국인 친구가 지도교수와 미팅을 하다가 사소한 것에 대한 교수의 지적에 'It is okay' 라고 말 했더니 교수가 정색을 하고 정면으로 눈을 보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천천히 또박또박 'No, it is NOT okay'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괜찮다는 말이 필요할 때도 있고 안 괜찮다는 말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표현의 빈도나 그 의미의 무게는 문화에 따라 사람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

인도인인 내 친구는 괜찮다는 말을 아주 자주 하는 편이다. 뭔가 작업을 할 때 내가 옆에서 조심하라고 말하면 괜찮다고 대답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뭔가를 부숴먹는 것이 일상이다. 그 친구가 박사 예비 심사를 준비하고 있을 때 모두가 걱정을 하고 도와주려고 하거나 조언을 해 주거나 할 때도 'Dude, it is okay' 라고 항변하듯 말하곤 했다. 대체 안 괜찮은 때는 언제인지 궁금할 정도이다. 처음엔 많이 답답했다. 나도 'No, it is NOT okay at all' 이런 말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자꾸 지내다보니 그 친구와 내가 극단적으로 다른 괜찮고 안 괜찮은 기준에 대해 나도 양보할 부분이 있지 않나 싶다. 그 친구는 너무 많은 것을 괜찮게 보고 있는 것이 문제라면 나는 너무 많은 것을 안 괜찮게 보는 것이 문제라는 말이다.

이제 내 박사 예비 심사가 다가오고 있다. 긴장은 날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고 언제나 그렇듯이 나는 계획 없고 불규칙한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오늘은 늦게 일어났지만 내일 아침엔 일찍 일어나서 오늘 다 못한 일 마저 해야지 다짐하면서 하지 못한 일을 덮어둔 채 시간이 됐다는 핑계로 밥을 먹으러 가고 잠을 자러 간다. 정작 다음날 일어나보면 아침 10시이고 학교가서 얼마 되지 않아 점심을 먹느라 시간을 쓰느니 아점을 먹고 가야지 하고 아점을 먹고 12시쯤 설렁설렁 학교를 가 보면 일찍 학교에 와서 공부를 하고 하루 일과의 절반을 마친 학생들이 이미 점심을 먹으러 가 있는 사이 나는 연구실에 앉아서 그제야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침 9시에 출근한 학생들이 5시에 퇴근할 때 나는 죄책감과 부끄러움을 느끼며 저녁 먹는 시간을 미루고 미룬다음 9시에 퇴근하고 10시에 저녁을 먹는다. 이게 괜찮을 수가 있을까. 제대로 된 인간의 삶인가 하는 의심이 생길 때도 있다. 정녕 박사 예비 심사가 몇 주 안 남은 사람의 생활 맞나 싶다.

작년 재작년에는 그래도 일주일 세번 아침 미팅이 있어서 매일 8시에 학교에 가야했다. 교수님이 바뀐 다음부터는 억지로 하는 미팅도 없고 수업도 첫 2년 동안 미친듯이 (학점을 빵꾸 내 가면서) 다 들어버려서 이제 수업 들으려고 규칙적으로 학교 강의실을 찾아가지 않아도 된다. 연구에 필요한 데이터 처리, 그림 그리기, 보고서 쓰기는 혼자 하는 것이고 집에서나 연구실에서 아무때나 할 수 있으니 학교에 반드시 가야 하는 때는 공동 실험실 작업을 할 때 아니면 친구와 토론이 필요할 때, 세미나가 있을 때 등이다. 교수님은 출장 가셨을 때 아니면 하루에 한두 번 학생 연구실에 들르시는데 나를 보면 업데이트를 물어보고 정보를 전해주시곤 한다. 학생이 교수님을 따라다니는게 정상인데 교수님이 나를 따라다니느라 번거로워 하시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나는 이렇게 비효율적이고 무계획적이고 불성실한 대학원 생활을 하고 있는데 왜 이 교수님은 나를 갈구지 않으시는 건가. 3월 중순에 쓰라고 했던 논문은 아직도 아무 업데이트가 없다. 근데 교수님은 나를 볼 때마다 웃으며 농담도 하고 도움되는 정보도 알려주신다. 정말로 진심으로 나를 보면 기쁘고 즐거우신 건가.

교수님한테 솔직하게 말했다. 예비 심사도 걱정되고 연구나 프로젝트 일을 내가 잘 못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교수님은 여태까지 내가 언제 너 연구 잘 못 한다고 불평하거나 지적한 적 있느냐 되물으셨다. 나는 교수님이 나를 왜 지적을 안하시는지 나도 궁금하다고 했다. 교수님은 내가 충분히 잘 하고 있고 지금 하는 대로 계속 하면 잘 될거라고 하셨다. 교수님은 아까 그 인도인 친구는 어떻게 졸업시키나 걱정이 많이 되지만 나보고 너는 이미 결과도 좀 있고 physics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니 예비 심사든 졸업이든 걱정이 별로 안 된다고 하셨다. 이번 여름엔 아마 니가 결과를 제일 많이 낼 거니까 걱정 말고 서두를 거 없고 부지런히 하던 일 계속 하면 된다 하셨다.

뭘 기대하고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교수님 대답을 듣고 내 기분은 순간 좀 안도감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불만족스럽고 더 빨리 더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이 답답하고 초조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평생을 안 괜찮은 것만 보며 살아온 내가 교수님이나 내 인도 출신 친구처럼 괜찮은 것을 먼저 볼 수 있으려면 얼마나 오래 걸릴지 알 수가 없다. 아직 내 눈에는 안 괜찮은 것만 보인다. 대학원생이라서 그런가 한국인이라서 그런가 아님 그냥 이렇게 태어나서 그런가 알 수 없지만 다들 괜찮다 하면 괜찮은가보다 하고 편하게 잠을 자는 편이 안 괜찮다고 짜증내고 초조해하느라 잠 못 자는 것보다 어쨌든 낫다.


빡션 이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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