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대학원생들이 하는 농담에 학사 학위는 모든 걸 다 깨달은 사람, 석사 학위는 알고 보니 아무 것도 모르겠다는 걸 깨달은 사람, 박사 학위는 가만 보니 나 말고도 다들 아무 것도 모른다는 걸 깨달은 사람에게 수여된다고 한다.

하루 종일 실험실에 있었지만 아무것도 모르겠다. 학부를 졸업하고도 몇 년이다 이 짓을 했는데 아직도 모르겠다. 심지어 괜찮은 논문도 하나 곧 출판되는데 아직 내가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암흑 그 상태에서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남들은 다들 잘 하는 것 같은데 나는 모르겠다. 아직 나는 박사 학위를 받을 준비가 되지는 않은 것 같다.

박사 연구는 한 분야에서 한 가지 주제에 대해서 그 중에 하나의 현상에 대해 세상 누구보다 잘 알아야 한다. 그러고 나서 내가 새로운 것을 알아낸 다음에 논문을 발표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새로운 지식을 전파하는 것이다. 세상 누구보다 더 잘 알기 위해서는 넓게 두루두루 배우는 것과 또 다른 방식의 공부가 필요하다. 단 한가지를 끝없이 생각하고 고민하고 내가 한 실험 데이터를 보고 또 보고 또 보는 과정이 있어야 가능하다.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은 들여다보지 않는 사이에 내 머릿속에서 서서히 지워지고 있다. 괜찮다. 나는 재료를 연구하는 사람도 아니고 제어를 공부하는 사람도 아니다. 열, 유체, 측정만이 중요하다. 내 주변에 있는 것은 모두 내려두고 있다. 친구를 만나거나 여행을 다니거나 취미 활동, 운동같은 다른 활동을 하면서도 내 머릿속에는 열, 유체, 측정이 자리잡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들여다보면 이거 하나 조차 이해를 완전히 못 하겠다. 끝이 없다.

며칠 전 세미나를 듣고 난 뒤에 옆자리 친구에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물어봤다. 옆자리 친구가 대답하기도 전에 말하기 좋아하는 다른 친구가 오더니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물어본 것은 그게 아니었다. 그리고 그 친구가 말한 것은 내 질문을 해결하는 대신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게 아니라고 말했다. 그 친구는 나에게 너는 여기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몰라 라고 웃으며 말했다. 원래 말을 막 하는 사람이지만 그런 말은 누구에게도 하면 안 되는 말이다. 나는 속에서 화가 끓었다. 너 참 대단하구나 대꾸하고 그 이후에 말은 듣지 않고 내 할 말만 하고 그만뒀다. 친구는 내 성질을 돋구고 돌아갔고 나는 처음 질문은 관두고 그 친구가 말한 것에 대해서 찾아보고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면서 배웠다. 그 친구의 말이 내 질문에 대한 친절한 설명은 아니었지만 그 친구의 말이 맞았다. 이해하면 이해할수록 그 친구의 설명이 맞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참을 생각해 보니 그 친구의 설명을 이해한 다음에야 내가 채음 질문했던 것에 대한 대답을 찾을 수 있었다. 아마도 내가 기분이 나빴던 건 내가 정말로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또 고민이 시작되었다. 똑똑하면서 싸가지없는 것은 올바른 삶인가 하는 것 말이다. 똑똑하고 성실하고 연구 성과가 좋다면 잘 모르는 사람을 조롱하고 막말하면서도 교수님의 애정을 받는 수제자가 될 수 있는 예가 또 나타났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 친구는 평소 행실은 좋은 편이다. 딱 한 가지 조금 거만한 점이 있고 저런 식의 말로 남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있지만 남이 도움이 필요하면 돕고 사람을 만나고 대화하고 자기 자랑하며 지식을 알려주길 좋아하는 사람이다. 속으로 이번은 봐 주기로 했다. 아니라 하더라도 딱히 뭐 내가 할 일은 없다. 내 코가 석자인데 남의 인성에 왈가왈부 할 겨를이 없다.

그 친구한테 얼마 전에 자기 중간 발표 할 때 얘기를 들었다. 교수한테 질문이 들어왔는데 자기는 삼 년 동안 이 연구를 했지만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는 것을 교수는 딱 10분 듣고 질문을 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고 솔직하게 정말 잘 모르겠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평소 거만한 그 친구가 하는 말로 그다지 어울린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 말 자체는 정말 맞다. 모르는 걸 안다고 우기는 것보다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낫다. 내가 한 질문으로 다퉜던 것 때문에 한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또 반성해야 한다. 싸가지가 있든 없든 내가 모르는 것을 아는 사람의 말은 잘 들어야 한다. 그게 아름다운 세상은 아니지만 난 그렇게라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모르는 것을 고통스럽게 배우고 있다. 더 좋은 방법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친구는 나에게 너는 우리와 좀 다르다고 했다. 맞다. 나는 특이한 케이스이다. 원래부터 열전달을 했던 사람이 아니라 연구실에 있는 다른 학생들이 아는 것을 나는 모르고 다른 학생들이 모르는 것을 내가 안다. 어찌됐든 지금 하는 것은 열전달 측정이니 내가 배울 것이 더 많다. 배우고 또 배우고 배워야지 자존심 같은 것을 가지는 것은 지금 사치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나는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과 여기서 배운 것을 다 가지고 잘난 사람이 되면 되는 것이다.


빡션 이 작성.

 

 

 

 


당신의 의견을 작성해 주세요.

≪ Prev : 1 : 2 : 3 : 4 : 5 : ... 7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