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도리탕은 일본어에 뿌리를 둔 음식 이름이다. 도리탕이라는 말은 50-70년대에 일본말과 한국말을 조합해서 만들어진 신조어였으며 감자와 닭을 주 재료로 만든 매운 양념으로 자작한 국물이 있는 닭찜의 일종인 당시 유행하던 음식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80년대 이후 경양식이 유행하면서 도리탕에서 닭도리탕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요즘에는 이렇게 말하면 거품 물고 달려들며 반박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왜 도리가 순우리말이 아닌 일본어인지는 이전에 쓴 글이 있다.

“우리나라 거리는 혼란의 도가니입니다. 대학들은 폭동과 난동을 피우는 학생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우리나라를 호시탐탐 파괴하려 하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무력으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국가의 도처에 지금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부의 적과 외부의 적이 들끓고 있는 지금 우리나라에는 법과 질서가 필요합니다. 법과 질서가 없다면 우리나라는 살 수가 없습니다.”
- 아돌프 히틀러, 미국 역사정치학자 하워드 진 <오만한 제국>

히틀러는 인간성을 말살하고 국민에게 법과 질서를 강요했다. 대중이 한 때 거기에 열광했던 것은 큰 비극이 시작되는 지점이었기에 사람들은 이후 스스로 돌아보며 법과 질서를 강요하는 모습에 큰 경계를 하게 되었다. 그런 배경을 토대로 남들의 문법이나 맞춤법을 지적하며 본질을 흐리는 사람을 비꼬는 말이 문법 나치이다. 영어권에서 Grammar Nazi라고 쓰이던 것을 그대로 번역해서 2010년대부터 한국어에서도 자주 쓰이는 말 되었다.

한동안 이 나라의 지도자는 한국말보다 일본어를 유창하게 하는 사람이었다. 그 전에는 외국인 여자와 결혼한 거의 교포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한국어 문법을 모르거나 철자법을 틀리는 것은 사소한 일이었다. 지도자들도 그랬기 때문이다. 지도자들은 어눌한 한국말로 연설을 해야 했지만, 문서는 한자였으니 조사만 바꾸면 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평범한 대졸자는 띄어쓰기를 할 줄 모르는 나라. 학교에서 자국민에게 자국어 문법을 가르치지 않는 나라. 출세하기 위해서는 일본어를 잘 해야 했고, 한자를 잘 알아야 했고, 시간이 지나자 영어를 잘 해야 했다. 한국어를 잘 하는 것은 자랑거리도 되지 않았고 당장에 스펙이 급한 젊은이들이 열과 성을 갈아넣을 대상은 절대 아니었다. 한국어를 공부하는 것은 역사상 한 번도 대단한 일이 된 적이 없다. 국민들은 자국어를 배운 적도 없고 가르친 적도 없었다. 가르치려는 사람은 배우려고 했지만 애국적인 가난한 학자들 외에는 한국어라는 반도의 사투리를 체계적으로 연구한 결과물은 많지 않았다. 중 고등 학교 때 국어는 한문학을 전공한 선생님이 대신 가르쳤고, 문학 작품의 해석을 한자 풀이로 다는 것이 그의 주 업무였다. 교사들이 한국어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교사들도 모르는데 누가 알까.

인정할 것은 솔직히 인정하자. 한국인들은 한국말을 잘 모른다. 너무도 많이 틀린다. 형용사가 용언인가 물어봤을 때 답을 아는 사람은 너무 적었다. 형용사를 모르면 그림씨라도 알아야 핑계가 되지 않겠는가. 내가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데에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은 그러지 못한다. 우리에게 한국어 문법과 발음법, 한글 맞춤법은 누군가 얘기했던 암 덩어리 규제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어차피 지키지도 않고 관리도 안 되는 다 바래고 지워진 횡단보도라면 일시정지 하는 사람이 오히려 교통 체증 유발자인 것처럼 그렇다. 사람들은 어차피 다 틀리는 닭도리탕 누가 나서서 잘못된 게 아니라고 말해줬으면 하고 바랐다.

번쩍하고 나타난 용자 이외수가 2012년에 닭도리탕의 도리는 고유어라는 주장을 폈을 때 사람들은 속이 시웠했고, 그 동안 문법 나치들에게 당해서 입에도 잘 붙지 않는 닭볶음탕이라는 말을 억지로 쓰는 행위를 후련하게 버릴 명분에 고마워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외수가 인용한 것은 한글학회 사람이 말했다는 것이 근거였다. 실상은 한글학회와 관계 없는 사람의 억측이었다. 그들은 한글학회를 인용해서 (인용하려고 노력해서) 한글학회와 국어원을 비판했다. 정신승리는 쟁취했다. 그리고 닭도리탕은 그 논리에서 영원한 고유어가 되었다. 처음부터 고유어였고 고유어가 아니면 안 되는 것이었다.

닭도리탕이라는 말을 쓰는 스스로에게 눈을 흘기며 일제 잔재라고 쓰지 말라고 타박하는 깨시민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아가 그들을 가르치는 또 하나의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 닭도리탕은 일제 잔재니까 닭볶음탕이라고 하라고 면박주는 문법 나치에게 "음식 이름에 볶음과 탕이 동시에 들어가는 것이 어디 있냐"면서 아는 척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꽤나 흡족했다. 마치 문법 나치들보다 더 센 지적 능력을 가진 것처럼 통쾌한 복수를 할 무기가 생긴 것이다. 이번에 설명한 근거가 말이 안 된다면 다른 논리를 찾아내고 또 찾아낼 것이다. 그래야 그동안 자기들을 무식하다면서 탄압하며 법과 질서를 가르치던 문법 나치들을 무찌르고 과거를 돌아보지 않는 합리화로 자기들의 정의를 유지할 수 있다. 그들은 새로운 나치가 되었다.

참고
https://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2/24/2012022401986.html
http://ppaktion.maru.net/838


2020/04/02 05:52 2020/04/02 05:52
얼음꽃 이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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