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존경했던 분이 누구인가 물으면 고민할 것도 없이 장기려 선생님이다. "할아버지 손은 약손"이라는 책을 읽고 크게 감동받았다. 그리고 나서는 능력 있고 인품 없는 사람들은 꼴보기 싫었다.

의사들을 존경하는가 하면 대부분 그렇다. 좋은 의사들 얘기를 들을 때는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참 존경스럽다. 그렇다고 직업만 가지고 모든 의사를 존경할 수는 없다. 어느 직업을 들어도 마찬가지 대답을 할 수밖에 없다. 전문직이든 평범한 회사원이든 대부분 좋은 사람들이고 드물게 성인군자같은 사람도 있고 드물게 범죄자도 있다.

언젠가 내가 장기려를 존경한다고 말했더니 "장기려 개새끼라던데요"라고 말한 사람이 있었다. 너무도 의외인 대답에 잠시 당황도 했지만 평정을 찾고 침착하게 그 분의 생각이 무엇인가 물었다. 그 분은 자기 부모님을 존경하는데 부모님이 장기려를 아는 사람이었다 한다. 부모님에게 장기려가 인성이 형편없는 아주 나쁜 사람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고 그걸 굳게 믿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님이 젊었을 때 어떤 일을 하셨나 물었더니 간호사라고 했다.

그 말이 진짜라면 어떤 상황인지 짐작은 간다. 장기려 선생님 밑에서 일하는 직원들 입장에서 일을 하기 쉬웠을 리가 없다. 만약 장기려 선생님이 직원들에게 일만 많이 시키고 월급은 제대로 못 줬다고 가정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을만큼 환자를 위해 헌신하는 희생 정신이 월등하신 분이었으니까. 장기려와 일했던 모든 직원들이 착한 사람일 수는 없다. 직원들 중에는 장기려 선생의 헌신을 배우려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별 감흥 없이 먹고 사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장기려와 일하며 환자에게 헌신해야 하는 것을 원망했던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세상은 넓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싶었다. 그 사람과 가까이 지내고 싶지 않았다. 장기려 선생 덕분에 몇몇 의료 관계자가 갑부가 될 기회를 놓쳐서 원망할 수는 있겠지만 훨씬 많은 사람들, 특히 어려운 사람들의 수많은 목숨을 구하는 데에는 장기려 선생님의 덕이 있다. 장기려 선생님이 만든 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이 없었다면 펄펄 끓는 열병을 앓아서 페니실린 주사를 맞고 죽다 겨우 살아난 가난한 집 아이 이야기는 있을 수 없다. 우리 아버지가 어렸을 때 이야기이다. 이런 식으로 어떻게 보면 우리 나라 사람 모두가 장기려 선생님과 그 분과 같이 일한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2020/09/09 13:13 2020/09/09 13:13
얼음꽃 이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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