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 1등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사람의 노력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조건이 다 맞아야 할 수 있는 것이 전교 1등이다. 당연히 노력 많이 해야 한다. 그렇치만 전교 1등이 제일 많이 노력한 사람일까. 아니다.

학창시절에 친구들과 나를 비교해 보자. 열심히 공부를 안 하는 친구는 문제를 못 푼다. 그건 당연하다. 나는 열심히 공부를 하고 세 번을 꼼꼼히 문제를 풀어 가면서 마침내 문제를 다 이해했다. 그렇게 얻은 지식은 내 노력에 대한 보상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다른 친구는 나보다 더 열심히 문제를 열 번을 풀고도 문제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그 친구한테 문제에 대한 설명을 해 주면 그걸 세 번 만에 이해한 내가 대단해 보인다는 듯이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반응을 했다. 열심히 공부하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문제를 이해하는 데에 모든 사람이 같은 노력을 들이는 것은 아니다.

살다 보면 나보다 더 노력을 많이 하는데 나보다 결과를 못 얻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그게 타고난 지능이든 학문 외적인 스킬이든 부모의 정보력이든 가정교육이든 노력 이외에 성적을 좌우하는 요인이 너무도 많다. 종교인은 신의 뜻이라고 할 것이고 아닌 사람은 우연의 연속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부모님이 평범하거나 조금 좋은 편인 머리를 물려주신 것, 밥 굶지 않고 안정적인 환경에서 학교를 잘 다닐 수 있었던 것, 이상한 교사를 만나지 않아서 수업을 잘 들을 수 있었던 것, 그리고 거기에 더해지는 99퍼센트의 노력이 나의 성적을 만든 것이다. 다른 요소를 다 더해도 1퍼센트라고 하지만 그 1퍼센트가 채워지지 않으면 열심히 해봐도 겨우 상위권 언저리이다. 전교 1등은 될 수 없다. 사실 중요한 건 그 1퍼센트이다.

전교 1등을 했다고 으스대는 평범한 사람이 만약 어렸을 때 불우한 가정 환경에서 자랐다면 같은 노력으로 1등을 할 수 있었을까. 아닐 것이다. 만약 신체적으로 크게 다쳐서 학교를 잘 다니지 못했더라면. 단지 머리가 나빠서 남들보다 이해력이 한참 떨어진다면. 나쁜 교사를 만나서 학교 생활이 힘들고 정신적으로 괴롭힘을 당했더라면. 갑자기 교육제도가 확 바뀌어서 적응하지 못하게 됐다면. 후진국에 태어나서 교육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더라면. 그 때도 그는 전교 1등이었을까. 아닐것이다.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성적의 최대치는 정해져있고 그 한계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나머지는 운이다.

만약 내가 전교 1등이라면 이 세상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나보다 성적이 낮았던 대부분의 사람을 열등한 개체 취급하여 경멸해야 할까. 만약 그렇다면 그 사람도 마찬가지로 더 좋은 학교에서 전교 1등을 한 사람으로부터 똑같은 경멸을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전국의 암말들이 단 한두마리의 수컷 종마의 씨를 받듯이, 전국에서 손가락에 꼽는 몇 명의 천재를 제외한 변방의 잡 고등학교에서 전교 1등을 했던 대부분의 샌님들은 거세당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더라도 그는 할 말이 없어야 한다. 남에게 주어지지 않는 능력과 기회가 나에게 주어졌구나 이걸 잘 써서 내 주변 사람들이 행복하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편이 그나마 낫다. 그보다 더 좋은 건 전교 1등이었던 사실을 성인이 된 지금 와서 돌아보는 것이 얼마나 시간낭비인지, 그걸 남에게 말하는 것이 얼마나 멍청한지 깨닫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성인이 되어서 전교 1등 운운하는 사람은 다른 세상을 보지 못하고 스스로의 세계에 갇혀서 자기만 잘난 맛에 사는 공감능력이 결여되어 있는 사람이다. 공감 능력도 지능이다. 사람이 모든 면에서 뛰어날 수는 없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공감 능력이라는 인간이 살아가는데에 필요한 한 가지 덕목이 바닥임을 자랑하는 것이 스스로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

만약에 내가 전교 1등을 할 능력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이 모든 면에서 뛰어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공부에서 최우수학생이 되지 않는 사람은 다른 능력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 누가 누굴 동정할 필요도 없고 불평할 이유도 없다. 어쨌든 학창시절에 자기의 능력으로 받을 수 있는 높은 성적을 위해 많이 배우고 공부하는 것은 인생을 사는 데에 누구에게나 도움이 되는 것은 틀림없다. 남들보다 더 잘해서 전교 1등을 굳이 하지 않아도,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행복한 인생을 설계하기 위해서 학교 공부는 아주 유용하다.

내 친구 중에 돈을 제일 잘 버는 사람, 제일 잘 사는 사람은 학창시절 공부를 제일 잘 했던 사람일까. 아닌 것 같다. 내 친구 중에 세상에 가장 쓸모있는 사람은 공부를 제일 잘 했던 사람일까. 그도 역시 아니다. 내 친구 중에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일까도 궁금하다. 같은 질문을 아버지에게 물어봤다. 아버지는 학창시절 친구 중에 공부는 못하지만 친구들과 사이가 좋안던 사람이 지금 와서 보면 가장 행복하게 잘 사는 것 같다고 답했다. 그 친구는 누구에게나 잘 대해주었고 대학은 안 갔어도 사람을 잘 다루고 사업 수완이 좋아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잘 살고 있다고 했다. 전교 1등이 누구였는가는 별 논의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학창시절 공부 잘 했던 사람이 어른이 되어서 전교 1등이었던 것을 되새기는 것만큼 쓸모없는 일이 또 있을까.

2020/09/04 15:49 2020/09/04 15:49
얼음꽃 이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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