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뉴스에 정신대 할머니들이 나올 때 사람들은 청구권 협정이 이미 끝났으니 다 지난 일이고 들춰봤자 창피하기만 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와서 어쩌라고 더럽고 남사스러운 말을 하느냐 했다. 소녀상이 여기저기 세워지고 일본 극우가 소녀상에 침을 뱉고 화를 내며 "믿을 수 없는 나라"라는 핑계를 만들어가며까지 부품 소재 수출을 제한하는 뗑깡 사태가 벌어질 거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 때 사람들은 '우리가 일본을 따라가려면 얼마나 걸릴까'를 토론하며 꿈같은 일이라고 막연한 환상이며 시기상조 샴페인이라고 생각했지 우리가 삼십 년 안에 일본보다 그 어느 하나에서라도 더 잘 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대통령이 일본에 가서 무릎꿇고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가 드러나지 않도록 힘쓰지 않은 일에 사과하지 않으면 삼성이 망하고 나라가 망한다'고 말하던 사람들은 불과 세 달을 버티지 못하고 다 조용해졌다. 식민 지배가 끝난 지 백년이 돼 가고 있지만 깊게 새겨진 지독한 열등감이 아직 우리 사회에 남아있었던 것이다. 열등감은 상대가 굴복하는 것만을 목표로 만들지만 우리가 떳떳하고 자신이 있다면 상대의 굴복을 바랄 필요는 없다는 것을 이제 깨닫고 있다. 우리는 떳떳하고 자신있게 우리 할 일을 묵묵히 해 나가면 된다.

정의연, 옛 정대협이 국민들과 국외 교민들과 함께 욕을 먹으면서 테러 위협을 느끼면서 소녀상을 세워갔다. 남들이 불가능이라 말할 때 꿋꿋이 삼십 년을 한결같이 고생하던 그 분들의 노력으로 미국에까지 소녀상이 세워졌고 그 분들의 기여로 만들어진 법 덕분에 국가에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생활비 의료비 장례비 등을 지원하게 되었다. 피해에 비하자면 아주 작은 지원이겠지만 처음으로 나라에서 피해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도움을 주게 된 것은 의미가 크다. 정신대 할머니들은 가해자에게 받지 못한 사과와 위로를 국가에서 대신 받은 셈이다. 이 모든 것, comfort women이라는 말이 외국에 알려지고 일본 극우가 열폭하며 수준 낮은 인지부조화를 보이는 일련의 모든 일은 용감한 할머니들과 정의연이 없었다면 그저 불가능한 망상에 그쳤을 것이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가해자는 사과하지 않았고 이영훈은 여전히 위안부 피해자들은 자발적으로 선택한 고수익 매춘업 종사자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마지막 괘씸죄는 감히 위대한 일본 우익에 대항한 주제에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해 국회의원이라는 권력까지 거머쥔 거만해보이는 여자에게로 쏟아지고 있다. 나는 이 강철같은 여장수를 응원한다. 그가 지치지 않기를 기원한다. 물에 빠지면 입만 동동 뜰 사람들이 몰려 다니며 딸이 타는 자동차 브랜드까지 조사하는 동안에도 그와 그 주변 사람들이 무사히 버텼으면 좋겠다. 논두렁 시계는 결국 없었지만 죽고 나면 시계가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슬픈 침묵만 남는 것을 우리는 겪어 봤다. 죽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괜찮다. 그 사람들은 기억력이 짧다. 그들은 한때 우리가 할머니들을 정신대라고 불렀었다는 것까지 금세 하얗게 잊어버렸다. 이 고비만 버티고 좋은 결과가 나오면 지금 신나서 조롱하는 사람들이 언제 그랬냐는듯이 태도를 바꿔서 정의연과 희망나비 사람들을 취재하러 다닐 것이다. 나는 그것이 홍창진이 말했던 '기사 작성의 메커니즘'일 것이라 추측한다. 그들의 휘발성 충성심보다 우리의 기억이 더 강인하다. 우리가 오래도록 과거를 잊지 않고 기억하면 머지않아 할머니들의 바람대로 어린 학생들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배우도록 할 수 있다.

다만 그 때까지 할머니들이 살아계시면 좋겠다. 내가 미국에 오던 때에 마흔 분 넘게 살아계셨는데 이제 열여섯 분밖에 남지 않았다. 가해자들은 국내의 집안 싸움을 구경하며 시간이 가는 것이 하루 하루 즐거울 것이다. 괜찮다. 우리는 백년을 더 싸울 수 있다. 할머니들 신체는 학대당했지만 정신은 더럽혀지지 않았듯이 신체가 시간이 가면 쇠약해질지라도 세상을 바꾸기 위해 아픈 이야기를 시작했던 할머니들의 용기는 죽지 않는다.

우리의 기억이 그들의 조롱보다 강하고 오래 갈 것이다. 오늘 내가 기억할 한 사람의 네 이름 - 곽혜경, 곽수연, 곽나연, 정나연. 나는 이 이름을 기억하고 싶다.

2020/05/30 16:15 2020/05/30 16:15
얼음꽃 이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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